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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환경과학공원 장영실과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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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영실의발명품

년도 발명품
1432년 간의 (천문관측기구)
1433년 혼천의 (천문관측기구)
1434년 자격루 (물시계) , 갑인자 (동활자), 앙부일구 (해시계)
1437년 현주·천평·정남일구 (해시계), 규표 (해그림자 측정기), 일성정시의 (낮, 밤 시간측정기)
1438년 옥루 (천상 자동물시계)
1441년 수표 (하천수위 측량기구)
1442년 측우기 (강우량 측정기)

01. 간의(1432년)

    • 천체의 위치를 측정하는 천문관측기구
    • - 앙부일구·자격루·혼천의와 함께 조선의 천문대에 설치한 가장 중요한 관측기기이다. 오늘날의 각도기와 비슷한 구조를 가졌으며, 혼천의를 간소화한 것이다. 1432년(세종14년)에 이천과 장영실에게 목제로 간의를 만들게 하여 실험에 성공하자 이를 구리로 주조하게 하였다. 이는 세종 때의 천문기구 정비 가운데 가장 뛰어난 업적의 하나이다.

      1438년(세종20년)에 경복궁 경회루 북쪽에 간의대를 세워 대간의(大簡儀)를 설치하는 외에 휴대에 편리한 소간의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이와 같은 시기에 명나라에서도 원나라 때의 천문기구를 복구하는 작업이 진행되어, 1437년(세종19년)에 간의를 비롯한 기구들이 황보중화에 의하여 제작되었다.

02. 혼천의(1433년)

    • 천체의 운행과 그 위치를 측정하던 천문관측기
    • - 간의 발명 1년 후 여러 과학자들과 함께 간의를 더욱 발전시킨 관측기구인 혼천의를 만들어 냈다. 간의에 이어 혼천의까지 조선의 기본적인 천문 관측기구인 것이다.

      중국에서 사용하던 혼천의는 천체운행을 관측하는 것이 큰 목적이었던 것에 비해 장영실이 제작한 혼천의는 정교한 동력장치를 이용해 천체운영을 운행을 재현하면서 그와 동시에 시간을 알려주는 시계로 조금은 특별했다.

03. 자격루(1434년)

    • 수력에 의해 자동으로 작동되는 물시계
    • - 국보 제229호, 덕수궁 소장
    • - 세종의 명으로 제작한 이 자동시보장치 물시계는 중국과 아라비아의 자동물시계를 비교, 연구하여 새로운 형태의 물시계를 만든 것이다.
      시간에 따라 종과 징, 북이 저절로 울리게 만들었고, 인형이 시간을 알려주는 표를 들고 나타나게 되어있는 정교한 자동 물시계였다.

04. 갑인자(1434년)

    • 갑인년에 주자소(鑄字所)에서 만든 동활자
    • - 1420년(세종2년)에 만든 경자자(庚子字)의 자체가 가늘고 빽빽하여 보기가 어려워지자 좀더 큰 활자가 필요하다하여 1434년(세종16년) 갑인년(甲寅年)에 왕명으로 주조된 활자이다.
      이천·김돈·김빈·장영실·이세형·정척·이순지 등이 두 달 동안에 20여 만의 큰 중자(中字)인 대자(大字)와 소자(小字)를 만들었다.
      활자의 모양이 바르고 글자의 크기가 고르게 조립되었으며, 자판의 빈틈을 납을 사용하지 않고 대나무를 이용하였으므로 글자가 선명하고 아름답다. 하루에 활자를 찍어 내는 양이 40여 장에 달하여 경자자보다 배 이상의 생산력을 가질 수 있었다.

05. 앙부일구(1434년)

    • 세종 시기 가장 널리 보급된 해시계
    • - 보물 제845호,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 - 세종때의 대표적 해시계인 앙부일구는 하늘을 바라보는 가마솥 해시계라는 뜻으로, 모양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장영실, 이천, 김조 등이 만들었던 해시계로 세계에서 우리나라에만 있는 유일하고 독특한 발명품이다. 햇빛에 의해 물체에 그림자가 생겼을 때 그림자의 위치로 시간을 측정하는 장치로써, 그림자를 받는 면이 오목한 것, 연직으로 벽면을 이룬 것 등 여러 종류인데 일반적인 것은 수영면이 오목한 반구형이다.
      그림자를 드리우게 하는 영침이 남쪽 밑에서 북극으로 솟아올라 중앙에 도달하는 구조로 되어있다. 또한 시각은 12개의 동물로 표시하여 백성들이 쉽게 시간을 읽을 수 있었다.

06. 현주일구 (1437년)

    • 휴대용 해시계
    • - 현주일구(懸珠日晷)는 1437년(세종 19)에 장영실․정초․김빈․이천․김돈 등이 제작한 휴대용 해시계이다. 북쪽 기둥에서 아래로 매달린 구슬을 이용하여 해시계의 수평을 잡고, 남쪽의 둥근 못에 지남침을 이용해 기기의 남북 방향을 잡는다.
      시반 양면에 시각 눈금을 새겨 놓고 시반에 맺힌 실 그림자로 시간을 측정하였다. 시반의 윗면은 춘분에서 추분까지, 아랫면은 추분에서 다음 해 춘분까지 사용하는 것이다.

07. 천평일구 (1437년)

    • 휴대용 해시계
    • - 보물 제845호,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 - 천평일구(天平日晷)는 적도시반(赤道時盤)을 가진 휴대용 해시계이다. 이 해시계는 1437년(세종 19)에 처음 제작한 것으로 말 위에서 사용했다고 한다. 같은 시기에 제작한 현주일구와 크기와 사용법이 유사하다. 하지만 기둥이 중심에 있고, 둥근 못이 남쪽과 북쪽에 있다.
      시반 양면에 시각 눈금을 새겨 놓고 시반에 맺힌 실 그림자로 시간을 측정하였다. 시반의 윗면은 춘분에서 추분까지, 아랫면은 추분에서 다음해 춘분까지 사용하는 것이다. 현주일구와는 현주장치를 빼고 수평을 잡기 위한 원지(圓池)를 하나 더 두었다는 점이 다르다

08. 정남일구 (1437년)

    • 지남침(나침반) 없이 남쪽을 맞히는 해시계
    • - 보물 제845호,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 - 정남일구는 다른 해시계와 달리 지남침을 쓰지 않고도 남북의 방향을 정확하게 잡을 수 있게 되어 있기 때문에 남쪽을 가리켜주는 해시계라는 뜻으로 ‘정남일구’라는 이름이 붙었다. 받침대의 길이는 1척 2촌 5분이며, 받침대에는 수평을 잡기 위한 물그릇이 장치되어 있다.
      남북으로는 기둥이 세워져 그 사이에 눈금을 그려 넣은 사유환(四遊環)·지평환(地平環) 등이 가설되었고, 눈으로 들여다볼 수 있도록 규형(窺衡)이 장치되었다. 크기로 보아 휴대용은 아니었고, 중국에서 이와 비슷한 해시계를 만들었다는 증거는 보이지 않는다. 해시계 가운데 가장 정밀한 종류의 것이다.

09. 규표 (1437년)

    • 해그림자 측정기
    • - 보물 제845호,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 - 규표(圭表)는 해가 남중할 때 막대기의 그림자를 측정해 1년의 길이를 측정하고 24기(氣)를 알기 위한 관측의기이다.
      받침석 위에 돌로 만든 21.2척의 규(圭)를 설치하고, 8척 높이로 청동 재질의 표(表)를 세웠다. 규에는 주척(周尺, 1척 = 20.7cm) 단위로 장 · 척 · 촌 · 분(丈尺寸分)을 새겨 해 그림자 길이를 측정하도록 하였다.
      표의 상단에는 횡량(橫樑)을 설치해 두 마리의 용이 받들도록 하였다. 영부(影符)는 규 위에 비친 횡량의 그림자를 더욱 정확하게 측정하기 위한 기구이다. 횡량의 그림자 길이는 계절에 따라 변하는데 해가 가장 높이 뜨는 하지에 가장 짧고, 동지에 가장 길다.

10. 일성정시의 (1437년)

    • 낮, 밤 시간측정기
    • - 일성정시의는 해시계와 별시계의 기능을 하나로 고안한 천문관측기기이다. 해시계의 원리와 별들이 북극성을 중심으로 규칙적으로 회전한다는 원리를 적용하여 낮과 밤의 시간을 측정할 수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세종은 “옛 문헌에는 별로써 시각을 정한다는 말이 있는데, 어떻게 측정하는 지에 대한 방법은 나와 있지 않다”고 하고 신하들에게 밤과 낮으로 시각을 잴 수 있는 기구를 만들라고 명하였다. 1437년(세종 19)에 구리로 4개의 일성정시의를 제작하였다. 하나는 궁궐 안에 왕이 다니는 내정에 둔 것으로 구름과 용으로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나머지 셋 중에 하나는 서운관에 주어 시간 관측에 사용하게 하고 나머지 둘은 함길도와 평안도 두 도의 절제사 영에 나누어 주어 경비 임무와 경계 태세 강화라는 목적에 쓰게 했다.

11. 옥루 (1438년)

    • 천상 자동물시계
    • - 자격루의 제작이 성공적으로 끝나자 장영실은 또 하나의 자동물시계 제작에 착수했다. 시간을 알려주는 자격루와 천체의 운행을 관측하는 혼천의를 결합한 천문기구를 만들고자 한 것이다.
      자격루와 혼천의, 이 두 가지를 결합하면 절기에 따른 태양의 위치를 정확히 알 수 있고 그 절기에 농촌에서 해야 할 일을 백성들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 하늘과 땅, 인간이 하나로 연결되는 이른바 세종이 꿈꿨던 왕도정치가 이뤄지는 것이었다.
      자격루가 완성된 지 4년 후, 1438년(세종 20)에 장영실은 또 하나의 자동물시계인 옥루를 완성하였고, 세종은 경복궁 침전 곁에 흠경각을 지어 그 안에 설치하도록 했다. 옥루는 지금 남아 있지 않아 아쉽게도 그 형태를 완벽히 알 수는 없고, 전해지는 기록으로 추측해 볼 뿐이다. 옥루는 자격루와 같은 물시계 장치뿐 만 아니라 태양의 운행 등 천체의 변화를 보여주는 장치까지 있는 천문시계이다. 또한 동지, 춘분, 하지, 추분까지 알려 주는 자동 종합물시계였다.

12. 수표(1441년)

    • 하천수위 측량기구
    • -보물 제838호, ⓒ한국학중앙연구원
    • - 강우량을 측정하는 데는 측우기를 사용하는 방법 이외에 하천의 수위 변화를 측정하는 방법도 있다. 비가 오면 하천의 수위가 올라가고, 가물면 하천의 수위가 내려간다는 자연현상에 주목한 방법이다. 1441년(세종 23)에는 측우기의 제작과 함께 청계천과 한강에 수표(水標)를 제작하여 설치하였다. 수표의 구조는 『세종실록』의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에 따르면, “1441년(세종 23) 8월에 마전교(馬前橋)의 서쪽 물 가운데에 넓적한 돌[薄石]을 놓고, 그 위를 깎아 받침돌[趺石] 두 개를 세운 다음 그 사이에 모난 나무 기둥을 끼워 넣었다”고 한다. 받침돌과 나무 기둥은 쇠갈고리[鐵鉤]로 묶어 고정시키고, 나무 기둥에 척(尺)·촌(寸)·분(分)의 수를 새겨 호조의 낭청(郎廳)으로 하여금 하천의 수위를 측정하여 보고하도록 하였다.

13. 측우기(1442년)

    • 강우량을 측정하기 위하여 쓰인 기구
    • - 보물 제842호, ⓒ문화재청
    • - 1441년(세종23년) 8월에 호조가 측우기 설치를 건의하여 다음해 5월에 측우에 관한 제도를 새로 제정하고 측우기를 만들었다.
      금속제 원통형 그릇에 빗물을 받아 표준화된 눈금의 자로 그 깊이를 측정했으며, 같은 규격의 기구와 자를 각 도의 군현에 설치하여 전국적으로 우량 관측 및 보고 체계를 갖추었다.